리뷰 - 황야의 이리
설사 어떤 소설가가 온갖 글쓰기에 대한 기술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헤르만 헤세처럼 글을 쓰기는 힘들 것이다. 싯다르타에서는 감탄이, 황야의 이리에서는 감탄에 이어 존경이 나온다.
자신만의 세계속에서 갖혀 사는 주인공 하리. 그는 훌륭한 지식인이지만 사회에 적응하는 데엔 실패했다.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셀 수 없는 존재들을 단 두 개의 존재로 구분하는 우를 범함으로써( 하나는 인간적인(인간), 하나는 야성적인(이리) ) 스스로를 끝없는 자학의 세계로 내몬다. 인간적인 모습이 나오면 이리가 으르렁거리고, 야성적인 모습이 나오면 인간이 채찍질한다. 단순히 자신을 잘못 관념화 하는 데에서 나온 결과 치고는 무시무시하다. 자기 파괴라니.
그는 하루 하루 죽음과 싸운다. 아니, 삶과 싸운다. 살을 에는 외로움 속에서. 죽을 것인가 말 것인가. 살 것인가 말 것인가. 허나 또한 비굴한 겁쟁이처럼 그는 죽음을 결심하고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며, 살기로 결심하고도 그 결심이 오래가지 못한다. 그는 그냥 그렇게 사회에도 속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스스로 자족하지도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 때 그의 마음을 현혹하는 여인이 등장한다. 소름끼칠만큼 하리를 파악하고 있는 그녀. 하지만 그 속내 또한 베일에 싸여있는 그녀. 그는 그런 그녀에게 끊임없이 빠져들어간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다시 삶의 기쁨을, 즐거움을 찾아나가고, 사랑을, 타인을 이해하는 법을, 삶의 지혜를 배워나간다.
하지만 그의 삶에 대한 정신병적인 진지함은 끝내 버리기 힘들었다. 마술의 극장이라는 허구에서, 그녀가 다른 남자와 같은 침대에서 발가벗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는 그녀를 죽여버린다. 그는 그 상황을 “유머”라는 “천재”들이 세상에 적응하는 도구를 사용하여 웃어버리지 못했다.
최종 결말이 어떻게 났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데, 어쨌든간에 이 책은 정말 지금까지 내가 읽어 본 소설중 유이무삼(?)하게 소장하고 싶은 책이다(다른 한 권은 싯다르타.) 물론 내가 소설을 별로 안읽어본 것도 있는데 기한이 되어서 도서관에 다시 갖다주어야 했을 때에는 너무 아까웠다.
헤르만 헤세가 주인공 하리를 통해 풀어나가는 자신의 이야기라고도 하는 책 황야의 이리. 인생을 심각하게 사는 사람들, 가볍게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 심심한 사람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 하여튼 누군들간에, 한 번쯤은 읽어보고 헤르만 헤세의 진가를 체험 해볼 만한(여러 측면에서 : 재미,구성,스토리,…) 소설이라 말하고 싶다.
PS. 번역도 정말 잘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