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우리는 왜 빠져드는가
하드 커버를 보고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는 내용의 책일 수 있다는 생각에 한 번, 제목에 이끌려 한 번 총 두 번 시선을 고정하였고, 별 고민 없이 선택한 책이다. 지난 주 일요일에 빌려 오늘에서야 다 읽었는데, 처음 다 읽은 시점까지만 해도 책에 대한 실망이 어마어마 했었다. 지루하고, 중구난방적이고, 뻔한 내용을 책이 서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인지 중간에 몇 번이나 그만 읽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대로 책을 덮는게 포기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상해 끝까지 읽었고 역시 후회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독후감을 쓰려고 하니 기억나는게 하나도 없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부분을 목차에서 보고 그 부분을 빠르게 훑었다. 왠일인지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영감과 새로운 사실들이 눈에 띄었다. 결국 난 처음부터 다시 속독을 하였다. 그리고 책에 대한 나의 평가는 달라졌다.
이 책은 “본질주의”라는 개념에 대해 깊이있게 설명하며 시작한다. 본질주의란 인간은 태어나면서 부터 사물이나 현상의 본질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고 또 거기에 재능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본질주의에 대해서 길게 운을 땐 이유는 이 책의 주제인 기쁨 혹은 쾌락이라는 것이 이 본질주의와 매우 깊게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쾌락의 근원을 알기 위해서는 결국 쾌락이 어떻게 오는지 그 본질을 살펴보아야 한다.
가장 먼저 먹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한다. 사람은 먹는 것에서 쾌락을 느끼고, 우리는 그 이유가 동물의 생존 전략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음식이 맛이 없다면 우린 모두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뻔한 사실을 글로 쓰기엔 너무 아깝다. 저자는 먹는 것의 쾌락 중 독특한 부분에 집중을 하며 먹는 쾌락의 본질로 접근한다. 식인을 하면서 쾌락을 느끼는 사람들은 왜일까? (마이베스 사건) 사람마다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여기서 논란이 컸던 와인 연구나 기타 사례를 제시하며 인간이 진정 먹는 것으로부터 얻는 쾌락의 본질은 무엇인지 묻는다.
다음엔 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역시 성적 쾌락이 발달한 이유에 대한 것은 너무 식상하다. 저자는 거기서 더 나아가 왜 남자가 처녀를 원하는지, 남자보다 여자가 힘이 세고 덩치가 큰 이유는 무엇인지 (부모 투자 이론, 공작새의 꼬리), 또 둘의 성격 차이와 성적 전략이 왜 다른지 (남자는 바람끼가 있고 여자는 왜 배우자를 고르는 데 까다로운지 등)에 대해 진화론적 관점을 소개한다. 또한 개인적으로 왜 근친상간이 금지되었고 남매간에는 성적 충동이 일어나지 않는지 궁금했었는데, 이 책에서는 납득할 만한 이유를 제시해주어서 유익했다 (근친퇴화.)
또 다른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예술로부터 얻어지는 쾌락에 관한 것이다. 인간에게 창조욕이 있다고 하고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에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왜 창조욕이 생겼을까에 대한 고민은 해보지 않았었다. 왜일까.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창조는 암컷의 환심을 얻으려는 노력에서 진화된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쉽게 얘기하면 공작새의 꼬리와 피카소의 그림은 일맥상통한다. 공작새의 꼬리만큼 흥미로운 이야기가 정원사새이다.
다음으로 허구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인간은 책, 영화, 소설, 이야기, 상상에 심취하고 거기서 쾌락을 느낀다. 왜 우리는 허구에서 쾌감을 느끼게 된 걸까. 저자는 자신의 생각과 사례를 들며 설명한다. 허구의 안전성, 그 안전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가상 학습, 또 허구의 극적이고 자극적인 요소로 인한 감각의 극대화, 그 허구를 구성한 사람의 지혜나 재치를 깨닫는 것이 쾌감의 본질이라 얘기한다. 이러한 것들은 다수의 사람들이 게임이나 소설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기도 한다.
게임 개발자로써 많이 유익한 책이었다. 지적으로도 많은 호기심을 해결해 주었다. 처음 읽고 리뷰 안쓰고 갖다 주었으면 후회할 뻔했다. 문체가 좀 어려운지 정신이 산만했는지 두 번 째 읽을 때에서야 책의 전체적인 메시지가 파악이 된다. 그리고 꽤 좋은 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쾌락, 기쁨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이 책이 괜찮은 사례와 주장을 제시한다. 관심있는 사람은 1독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아, 책에 언급되어 있진 않지만 요한 호이징가의 저서 호모 루덴스의 영향도 적잔히 받은 것 같다. 함께 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