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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의 역사

컴퓨터의 역사

왜 역사인가?

컴퓨터와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를 가진 나로써, 내가 그것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진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모호한 프로그래밍 개념에 대해 꼬리를 물고 물다 컴퓨터가 무엇이냐에 대한 질문에 도달했을 때 난 “그게 뭐였지..?”하며 머리를 긁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에 여러 컴퓨터 관련 시험에 응시하면서 주입식으로 관련된 지식들을 줄줄이 외운적은 있었지만, 주입식은 주입식. 시험 후 줄줄이 출혈됐나 보다. 주입식 학습 방식의 폐해를 다시 한 번 체감한다.

어쨌든 프로그래밍 전문가를 꿈꾸는 나였다. 따라서 프로그래밍 공간이 펼쳐지는 컴퓨터에 대해서만큼은 명확한 답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컴퓨터 탄생의 시초부터 오늘날의 컴퓨터까지의 흐름을 짚어주는 역사부터, 찬찬히 훑어보기로 했다. 그게 오늘 포스팅의 주제다. 역사의 원활한 이해를 위해서, 컴퓨터의 시초는 컴퓨팅(계산)이었다는, 책상은 책상이다는 사실만 기억하자.

컴퓨터의 시초

어떤 이유로든지, 옛부터 계산은 상당히 반복적이고 번거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옛 사람들도 계산을 단순하고 빠르고 편리하게 하기 위해 다양한 도구들을 고안해 냈다.그 중에서도 가장 간단하면서 효율적이었던 것은 주판이었다. 아버지의 말씀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만단위의 곱셈 계산에 답하는데 1초도 안걸리셨단다. 하지만 주판을 제외하면 17세기에 이르도록 계산을 위한 특별한 도구는 없었다. 그러던 중 파스칼이 톱니바퀴를 이용한 수동식 계산기를 고안해 냈다.

파스칼의 수동식 계산기는 십진수의 각 자리수를 나타내는 톱니바퀴들로 구성되었다. 각 바퀴에는 10개의 눈금이 있는데, 이 눈금들을 모두 움직이면 다음 자리의 톱니바퀴가 한눈금 움직인다. 계산의 예를 들면, 1017이라는 숫자에 207이라는 숫자를 더하려면, 톱니바퀴의 각 눈금을 1,0,1,7에 맞추고, 1의 자리의 톱니바퀴를 207번 돌리면 된다. ㅋㅋㅋ. 잘 낚였으면 다음으로 넘어가자. 하하, 그럴리가 없지 않은가? 각 자리수의 톱니바퀴를 2, 0, 7번 돌리면 된다. 총 9번을 돌리면 되겠다. 파스칼의 계산기는 그 원리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덧셈과 뺄샘만을 위한 계산기였다.

그로부터 29년 후인 1671년, 라이프니츠는 곱셈과 나눗셈도 가능한 계산기를 만들었다. 또한 십진법보다 더 기계장치에 적합한 진법을 연구하다 이진법을 창안하였다. 이진법이 기계장치에 더 적합한 이유는 아마 곱셈과 나눗셈 등 더 복잡한 계산을 십진법보다 간결하게 표현해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전자 컴퓨터의 등장

1823년, 드디어 오늘날의 컴퓨터 모델의 원형과 가까운 계산기가 고안되었다. 이것은 찰스 배비지에 의해서 제시된 견해로, 현대 컴퓨터의 기본 구성 요소인 입출력 장치, 기억장치, 연산장치, 제어장치를 모두 갖춘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기술적인 제약 때문에 그 당시엔 실현될 수 없었다. 참으로 안타까웠을 것이다. 찰스 배비지는 그 외에도 차분기관과 해석기관을 설계하였다. 차분기관은 삼각함수표를 유효숫자 5자리까지 계산하여 종이에 인쇄하는 장치였고, 해석기관은 컴퓨터의 방정식을 순차적으로 풀 수 있도록 고안된 장치였다.

1944년에, 이러한 배비지의 이론을 바탕으로 드디어 최초의 전자 컴퓨터가 탄생했다. 배비지도 그것을 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컴퓨터의 이름은 MARK-1. IBM사와 하버드 대학의 Howard Aiken이 이룬 업적이다. 3000개가 넘는 계전기와 기어로 만든 종이 테이프로 제어되는 자동순차적 제어방식의 거대한 괴물이었다. 연산 과정도 더럽게 느렸다고 한다. 빠른 계산 보다는,  복잡한 연산을 자동으로 해준다는 것에 의의가 있었단다.

다용도 컴퓨터의 등장과 역사

194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에거트와 J. W. 모클리는 최초의 전자식 계산기 에니악(ENIAC:Electronic Numerical Integrater And Computer)이라는 다용도 디지털 컴퓨터를 최초로 개발했다. 이것은 진공관을 사용한 최초의 자동 계산기로 18,000여 개의 진공관과 1,500개의 계전기를 사용하였고, 무게가 30t이나 되는 거대한 기계였다. 150kw의 전력을 소비하였고,프로그램을 배선판에 일일이 배선하는 외부 프로그램 방식이었으므로, 에니악에서는 작업에 따라 배선판을 교체해야만 하였다.
그 뒤 에니악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1945년 존 폰 노이만이 기억장치에 컴퓨터의 명령이나 데이터를 모두 기억시키는 프로그램 내장방식을 제안하였다.
   1949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이 프로그램 내장방식을 채택하여 세계 최초로 내부기억장치가 있는 에드삭(EDSAC)을 개발하였고, 미국에서는 1952년 노이만에 제안한 전자식 프로그램 내장방식인 에드박(EDVAC)을 만들었다. 
 또한 1951년에는 유니박-원(UNIVAC-I)을 만들어 상품화하는 데 성공하였는데, 이것이 최초의 상업용 컴퓨터이다. 에드삭은 소프트웨어 면에서도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 뒤 프린스턴고등연구소에서 노이만의 지도 아래 제작된 이아스(IAS) 컴퓨터를 비롯하여 차례로 매사추세츠공대의 월윈드(Whirlwind), 에커르트와 모클리의 바이낙(BINAC), 일리노이대학의 일리악(ILLIAC), 랜드회사의 조니악(JOHNIAC) 등이 제작되었다. 또한 컴퓨터의 크기는 반도체 기술과 전자기술의 발달로 점점 작아지고 연산속도도 피코초(ps) 단위로 빨라졌으며, 이용범위도 확대되어 가정은 물론 산업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다. 컴퓨터는 제1세대인 진공관, 제2세대인 트랜지스터, 제3세대인 IC, 제4세대인 초 LSI와 같이 대략 10년마다 집적도를 높여 고속화, 대용량화하였고, 슈퍼 컴퓨터가 출현하였다.
[출처: Wikipedia]

위의 글상자의 내용은 필요할 때만 한 번 읽어 볼 수 있게 내언어로 재해석 하지는 않았다.

결론

이것이 대략적인 컴퓨터의 역사다. 컴퓨터는 별것이 아니었다. 그냥 계산기였다. 단지 지금의 컴퓨터는 더 다양한 입력을 받을 수 있고 더 다양한 방법으로 출력을 할 수 있으며 더 복잡하고 어려운 연산을 해내고 더 복잡하고 다양한 제어가 가능하다. 그리고 더 많이 기억할 수 있다. 어쩃거나 컴퓨터에 대해서 이제 좀 알 것 같다.

컴퓨터는 계산기다. 이 사실만 기억한다면, 주판으로부터 시작되는 컴퓨터의 대략적인 역사의 흐름이 기억이 날 것이다. 그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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