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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떼기에 대하여

잡지떼기에 대하여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서 여러 방법들을 찾아보았다. 대부분 소묘를 권했다. 하지만 소묘는 석고상이 필요했고, 걔네들은 왠지 무섭고 낯설었다. 그러던 중 잡지떼기라는 방법이 눈에 들어왔다. 잡지 한 권 펴놓고 매일 30분 이상씩 편하게 따라 그리라는 잡지떼기. 가뭄에 단비를 만난것 같았다. 꾸준히 잡지 한 권을 다 끝냈다. 실력 향상이 있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미묘했고, 난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너무 발제자를 맹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발제자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발제자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작정 따라했다는 것이다. 난 왜 잡지떼기를 하는가부터 생각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서. 하지만 그림을 잘 그린다는게 무슨 뜻인지 묻자 난 생각에 잠겼다.

효과적인 표현이었는가. 그림의 목적은 표현이 아닐까? 내가 본 꽃의 아름다움, 길거리에서 마주친 이상형, 어제 밤에 꾼 무서운 꿈. 우린 갖가지 감정과 생각을 기록하고 표현하길 원한다. 그림은 시, 노래, 춤, 글 등과 같은 많은 표현 방식들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렇다면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은 잘 표현한다는 것이 된다. 좋은 표현은 두 가지를 만족해야 한다. 먼저 표현하는 대상의 주의를 잡을 수 있어야 하고, 그 다음 대상이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표현은 기초와 기술 위에서 노는 것이다. 그림엔 어떤 기초와 기술이 있을까? 기초에는 형태, 색, 명암, 재질감이, 기술엔 강조, 생략, 구도, 배치, 구성 등이 있다. 기초가 부족하면 어색한 그림이 되고, 기술이 부족하면 표현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그림을 연습할 땐 표현을 목표로 기초와 기술을 두루 향상 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잡지는 어느 카페에나 있고 가방에도 넣고 다니면서 언제든 볼 수 있어서 참 좋다. 이런 잡지를 활용한 잡지떼기가 효과가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면 잡지떼기는 과연 그림 실력 향상에 효과적일까? 잡지떼기를 통해 기초와 기술을 두루 훈련할 수 있을까? 그렇다. 잡지떼기로 위의 두 가지 능력을 모두 키워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틀은 최초로 잡지떼기의 이론을 정립한(?) 방사의 석가님의 것을 빌려왔다.

틀(구성)

  1. 관찰하기
  2. 그려보기
  3. 표현하기

방법

  1. 잡지를 하나 선택한다.
  2. 잡지의 첫 페이지를 펼친다.
  3. 첫 이미지에 대해 *관찰하기를 수행한다.
  4. *그려보기를 수행한다.
  5. 그림에 간단히 관찰하기/그려보기를 하며 느낀 점을 기술한다.
  6. 다음 그림으로 넘어간다.
  7. 매일 꾸준히 최소 30분-1시간 반복 수행한다.
  8. 일과중 심심할 때 *표현하기를 수행한다.

관찰하기(그림 당 1-2분)

  1. 그릴 그림을 선택한다.
  2. 그림을 보며 어떤 느낌을 받는지 묘사해본다.
  3. 어째서, 무엇으로부터 그런 느낌을 받는지 분석한다. 어떠한 기술들이 사용된 것 같고 그들이 어떤 감정을 일으키는지도 생각해본다.
  4. 형태 잡는게 어려운 사람은 형태에 대한 분석도 해본다.

그려보기(그림 당 5-30분)

  1. 형태를 잡는다.
  2. 색감을 채운다.( 지루하면 패스 )
  3. 명암을 준다.( 지루하면 패스 )
  4. 할 일이 없으면 질감도 줘 본다.( 기본 패스 )

표현하기(시간은 자유)

  1. 심심할 때 한다.
  2. 무엇을 표현할지 명확히 정한다.(청순한 여인의 옆모습??)
  3. 표현에 초점을 맞추고 그려본다.
  4. 망쳐도 즐거워한다.

관찰하기가 잡지떼기의 꽃이다. 무작정 그리는 것보다 그림과 그것을 바라보는 나를 분석하는 시간을 짧게 1분이라도 가진다. 이게 감수성, 분석력, 표현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그림을 기술적으로 분석하는 훈련을 하면 그림 보는 능력 뿐만 아니라 표현력도 향상된다. 형태에 약한 경우 그리기 전 전체적인 형태를 분석해 보면 그리는 과정이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그려보기는 기초를 훈련하는 시간이다. 따라서 방식도 소묘의 축소판과 같다. 형태를 그릴 때에는 전체로부터 디테일로 옮겨 가는 것이 좋다. 얼굴 다 완성하고 몸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얼굴과 몸통, 팔, 다리의 위치를 대략 잡아 주고, 계속 전체를 주시하며 각 부분을 조금씩 조금씩 옮겨 다니며 완성해 나가도록 한다.

메인은 아니지만 표현하기도 중요하다. 표현도 해본 놈이 한다고, 표현하려는 노력을 해야 표현력이 향상 된다. 또한 관찰하기, 그려보기를 하며 느끼고 분석하고 발견한 기술들을 써먹어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심심할 때, 5분만, 어느 종이든 상관 없으니 그려 본다. 메인은 아니니까 압박 없이 즐거운 느낌으로 낙서하듯 한다.

참조

  1. 잡지떼기 1 by 석가
  2. 잡지떼기 2 by 석가
  3. 잡지떼기 3 by 석가
This post is licensed under CC BY 4.0 by the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