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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안톤 체호프 단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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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 사람과 식사를 같이 해보고 싶다. 내가 접한 그는 말이 적고 사뭇 진지하면서도, 유쾌할 것만 같은 사람이다. 나도 모르게 계속 호감이 가고 보고싶은 그런 사람일 것만 같다. 함께 밥을 먹고 일주일이 지나면 다시 또 생각이 날 것만 같다. 그가 나의 친구가 된다면 그는 나의 정신적인 휴식처이자 고향과 같은 의미가 될 것이다.

모든 단편이 재미있었다. 책에는 대략 10개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그 중에 재미없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관리자의 죽음은 속이 터지게 하다가 마지막에는 어이없는 실소를 짓게 만드는 체호프 유머의 정수를 보여주었고(물론 내가 읽은 체호프의 유일한 유머 단편이지만 이건 분명 체호프 스타일의 유머임), 미녀에서 그가 보여준 미녀의 묘사력과 그런 미녀들을 일상속에서 마주치고 안타까워하며 스쳐보내는 범인들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안타까움의 찰나에 대한 묘사력은 공감을 자아낸다.

티푸스에서 보여준 당시에 유행한 장티푸스에 걸려 생사를 넘나드는 병자에 대한 묘사는 안타까움을 일게 했고, 의학에 대해서 무지하고 티푸스에 걸려본 적이 없는 내가 티푸스에 걸리면 어떻게 되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 단편 중 하나인 베로치카는 어떻게 하면 그렇게 사랑고백을 받은 남성의 마음을 잘 묘사할 수 있는지 모른다. 여성으로부터 갑작스런 고백을 받은 그 짧은 순간의 감정묘사부터 시작해서,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에 대한 판단력이 흐려지며, 어찌할바를 모르고 갈팡질팡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어린 시절 혹은 현재 연애를 할 때 의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단편 두 개가 있는데 바로 내기와 주교다. 불행해질 것만 같던 변호사와 당연 손해보는게 없었을 것 같은 부자의 입장이 어떻게 뒤 바뀌게 됐는지 보여주는 내기는 분명 인간의 심리적 약점을 여과없이 드러내었다. 또한 감옥에 갖힌 변호사를 통해서 인간의 내적 성장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그 짧은 단편 안에 녹아냈다.

주교에서는 주교가 죽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람이 얼마나 쉽게 잊혀지는가를 가감없이 담담하게 묘사하며 삶의 허무성을 표현하지만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담력을 피력한다. 분명 인생은 그처럼 허무한 것이며 허공의 먼지처럼 일어났다 가라앉은 그런 것이지만 그 것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글쓴이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단편의 매력은 군더더기가 없고 액기스만 있다는 것이다. 쓸 데 없는 내용을 빼고 중요한 내용을 더 자세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깊은 분석력과 이해도를 가진 체호프에게 이러한 단편은 우리의 정수를 찌르는 예리한 단도가 된다.

단편을 사랑한다면 읽어보길 바란다. 단편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역시 읽어보길 바란다. 왜냐하면… 사랑하게 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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